메뉴 메뉴
닫기
검색
 

SPECIAL

제 6 호 인류애 방전소

  • 작성일 2024-03-07
  • 좋아요 Like 5
  • 조회수 3121
자하의 기자들

EP1. 아니 진짜로… 왜 그러시는 거에요? – 송지민 기자


#1. 불편한 버스

(버스에 탄다. 카드를 찍는다. 고개를 들어 앉을 자리를 스캔한다. 모두가 창가 자리는 비운 채 통로 쪽 의자에 앉아있다. 다가간다. 아무도 옆자리로 이동하려는 기색이 없다. “어… 죄송한데 안으로 좀 들어 갈게요.”라고 말하며 비집고 들어간다. 아닐 때도 있지만 대개 내가 먼저 ‘STOP(정차)’ 버튼을 누른다. 아무래도 일어서서 비켜줄 것 같진 않다. 아니나다를까 가만히 있거나 무릎만 스윽 옆으로 돌린다. 그럼 나는 “내릴게요.”라 말하며 다시 어렵게 비집고 나간다.)

꼭 창가 자리로 비켜달라는 건 아니에요. 근데 옆자리에 앉으려 하거나 내리려 할 땐 조금 비켜 주시면 안 될까요?ㅠㅠ 짐이 많거나 옷이 두꺼운 계절엔 정말 힘들단 말이에요! 제가 가방이나 옷으로 당신을 치고 가길 바라시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조금만 더 배려합시다!


#2. 불편한 카페

스타벅스 3층은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것?! 언제부터 카페 위층들이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었나요? 혹시 저 몰래 이미 정해진 걸까요?ㅠㅠ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면서 재밌게 얘기하고 싶어요. 카페는 그러려고 만들어진 곳이잖아요… 어학사전에도 카페는 ‘음료수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나와 있다고요! 그런 카페에서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장소이니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힐끗힐끗 쳐다보시면 순간 여기가 도서관이었나 싶은 착각이 들어요… 내가 내 돈 내고 커피 마시면서 눈치를 봐야 합니까?! 커피 마시고 싶은데 주변 소음에 방해받지 않게 조용히 공부하고 싶은 분들께는 ‘스터디카페’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3. 불편한 댓글

프로불편러: 매사 예민하고 별것도 아닌 일을 과대 해석해서 논쟁을 부추기는 유난스러운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 이들은 쓸데없는 것을 트집 잡고 ‘이거 나만 불편한가요?’라는 말과 함께 동조를 이끌어 냄.

어느 기사나 영상 댓글들에 한결같이 존재하는 그들은 바로 프로불편러.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소식이 빠른지, 자기네끼리 공유라도 하는지 각종 이슈들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불편함과 불쾌함을 늘어놓곤 하는데, 보는 우리도 정말 불편합니다! 표현의 자유? 웃기고 있네요. 당신네들이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쓰는 댓글들은 우리가 보기엔 명예 훼손과 분란 조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든요?! 무조건적인 혐오와 편 가르기는 이제 그만하고, 불쾌함을 드러내거나 논점을 제기하고 싶을 땐 합당한 논리와 올바른 언어를 이용해보자고요. 

그런데 잠깐만…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프로불편러?





EP2. 단지 슬픈 날 – 임지혁 기자


  온종일 배탈에 걸려서 누워있다가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오늘은 건강검진이 있는 날, 국가가 그래도 건강 좀 챙기며 살라고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는 소위 세금값 하는 날이다. 그런 영광스러운 날에 배탈을 앓고 있다니, 다행스럽게도 내시경 등의 검사는 없이 일반 검진만 있으므로 다소 안심하고 옷을 꾸렸다. 요즘은 날이 추워서 단단히 챙겨 입어야만 한다. 

  그 날 아침에 대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배탈이 나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상황에서 혈액 검사를 위해 전날 21시부터 시작된 금식으로 나는 굉장히 초췌해져 있었다. 다행히 그날 아침에는 속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예약을 잡아둔 병원으로 걸어가면서 눈에 들어왔던 것은 오로지 빵집, 식당, 맛있는 수제 푸딩을 파는 과자집, 이런 것들 뿐이었다. 반대편에서 어디서 샀는지 붕어빵 하나를 물고 오는 어떤 아이를 나는 부르주아를 바라보는 프롤레타리아의 눈으로서 바라보았다. 어렵사리 가벼운 지갑의 도움으로 금식을 지켜내는데 성공하고서는 제시간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면서 본격적으로 건강검진이 시작되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엉망이던 건강검진은 지속적으로 혼돈스러워졌다. 혈액검사를 위해서 팔을 내밀었는데, 무언가 주사바늘이 들어오는 느낌이 평소와 많이 달랐다. 어찌어찌 혈액 채취에는 성공한 것 같지만 평소보다도 많이 쓰라렸던 팔에 그 날 저녁에 보니 피멍이 들어 있었다. 다음으로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서 방사선과로 이동하였는데, 그곳에는 정말이지 평소보다도 많은 대기인원들이 있었다. 방사선사 선생님도 당황스러우셨던지 빨리빨리 일하려고 하셨지만 접수를 해두고는 나름의 사정으로 다른 곳에 가버린 환자들을 찾아나서는 일 앞에서 그런 노력들은 번번히 좌절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내 이름이 불리자, 그제서야 약간의 안민의 눈초리를 보이며 촬영기 앞에 서게 되었다. 

  필자는 그러면서 결심하게 되었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져야만 한다. 검사가 끝나고는 든든하게 밥을 먹기로 하자. 이번 검사에서 특별히 이상이 있지는 않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곧바로 근처의 햄버거 집으로 향한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신제품 메뉴 하나와, 배고프니 햄버거를 하나 더 주문하고서는 드디어 이 배고픔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 햄버거 세트를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차, 곧바로 오후에 치과 검진을 잡아뒀다. 탄산음료에 대해서 얼마나 잔소리를 들을지. 게다가 배탈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리고 빈 속에 과식을 해서인지 속은 더더욱 부글부글해졌다. 나중의 일이지만 우편으로 도착한 검진 결과표의 수치들은 작년보다도 더 부정적이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 단지 슬픈 날이었을 뿐이다.





EP3. 발전하는 세상 속 우리의 인류애 – 이선민 기자


  우리가 일상에서 크게 눈치채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들이 있다. 나는 ‘기술의 발전에 적응해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불편한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첫 예시로 ‘키오스크’를 꼽고 싶다. 키오스크는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급격하게 보급되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비대면 생활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상명대 언덕 아래 돈가스 가게만 봐도 앉은 테이블에 있는 태블릿을 이용하여 주문하고, 바로 결제까지 끝낼 수 있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의 사용이 익숙해져서 키오스크는 매우 편리한 존재라고 여긴다. 굳이 타인과의 불필요한 대화 없이 혼자 밥을 먹는 상황에도 유용하게 사용되곤 한다.

  언젠가 동생 졸업식 날,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방문했을 때 키오스크가 생각보다 편리함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야 너무나 익숙하게 키오스크를 사용하지만, 연령대가 조금만 높아지면 여러 프로세스를 거쳐야 결제가 가능한, 이 키오스크에 어려움을 쉽게 느낀다는 것이다. 내 옆 키오스크를 이용하신 한 어르신은 나보다 일찍 키오스크 앞에 서 계셨음에도 쉽사리 음식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창으로 넘어가지 못하셨다. 나는 쉽사리 연배가 있으신 분께, ‘괜찮으시다면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혹여 내 딴에는 도움이고 선의라고 판단하고 건넨 말이, 그분들에게는 자신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나? 라는 생각을 하시게 될까 싶어서다. 망설이다 ‘혹시 결제 부분만 도와드릴까요?’라고 여쭸고, 어르신은 정말 고맙다고 말씀과 끝에는 “기술이 발전하는 건 좋은데, 나 같은 사람은 영영 이용 못 하는 건 아닌지 몰라”하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키오스크는 누군가를 거치지 않고 사용이 가능하다는 간편함과 편리함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그 누군가를 거치지 않기에 생기는 불편한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게 되면 다가오는 불편한 순간들이 뭘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불편한 점은 모두를 위한 편리함이 아니라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누군가는 낙오될 것이고, 이 누군가는 점점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최근 야구 한국시리즈 예매를 떠올렸다.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 이 기사를 봤을 수도 있다. 한국시리즈 진출 팀인 LG와 KT의 경기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LG는 프로야구 초창기 팀이기에 오랫동안 응원을 해온 팬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온라인 예매를 통한 티켓 예매가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기사를 보고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해당 야구팀의 팬이었지만, 표를 구하지 못해 야구 경기장 밖을 맴도는 어르신들이 많았다는 기사였다. 찾아보니 100% 온라인 예매였다. 취소표가 풀리게 되면 일반적으로 오프라인에서도 예매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온라인에서 풀리는 취소표는 다시 온라인에서 예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오프라인으로 예매할 수 있는 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에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표를 구하지 못하고 경기장 밖을 서성거리신 것이다. 이 상황은 명절마다 박 터지는, 국민 티켓팅이라고 불리는 ‘기차표 예매’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 기사 속 인터뷰 중 하나는 “딸이 온라인으로 표를 예매해 줘서 경기를 직관할 수 있었다”였다. 누군가는 도움이 없으면 이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맥없이 불편한 순간이라고 되새기며 인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간편함과 서로의 편리성을 위해 기술은 항상 발전하고, 우리는 발전하는 방향에 몸을 실으며 따라가고자 노력한다. 모두가 똑같이 적응해 가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기술 발전에 적응해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 우리도 겪게 될 일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머지 않아 우리의 부모님이 직면할 상황이라 생각하니 기사를 쓰면서 더욱 와 닿게 되었고, 이 순간이 나에게 왜 불편하게 다가왔는지를 인지할 수 있었다. 이 불편한 순간을 해소하기 위해 단순히 특정 누군가를 위하는 방안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모든 이들이 함께 혜택을 누리고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